가수 유영춘 프로필 나이 과거 영사운드 등불 결혼 아내(부인) 자녀 근황, 누구?

가수 유영춘이 ‘가요무대’에 출연합니다.

가수 유영춘 프로필 나이 과거 영사운드 등불 결혼 아내(부인) 자녀 근황, 누구?

유영춘은 1970년대 그룹사운드 영사운드의 보컬이자 리더로, 불후의 명곡 ‘등불’을 비롯해 ‘달무리’, ‘아름다운 계절’ 등을 통해 큰 사랑을 받은 가수입니다.

고등학생 시절 비틀스 음악에 매료돼 가수의 꿈을 키운 그는 미8군 무대를 시작으로 B-19, 실버코인즈, 히파이브(He-5)를 거쳐 영사운드에 합류하며 대한민국 그룹사운드의 역사를 함께해왔습니다.

특히 1972년 발표한 ‘등불’이 크게 히트하며 전성기를 맞았고, 이후 오랜 세월 영사운드를 이끌며 꾸준히 무대와 음악 활동을 이어왔는데요.

이번 ‘가요무대’ 출연을 계기로 가수 유영춘의 나이와 프로필, 어린 시절과 가수가 된 계기, 영사운드 ‘등불’, 아내와 자녀 등 그의 음악 인생과 근황에도 관심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가수 유영춘 어린 시절과 가수가 된 계기

유영춘은 1946년 서울 후암동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음악을 가까이하며 성장했는데요, 아버지는 상공부 공무원이었지만 피아노와 아코디언 등 악기를 다룰 줄 알았고, 6·25 전쟁 당시 피난길에도 다른 물건보다 아코디언을 챙겼을 만큼 음악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미8군에서 연주 활동을 하기도 했으며, 유영춘 역시 이러한 아버지의 영향을 받으며 일찍부터 음악을 접했습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는 건강 문제로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다섯 살 무렵 돼지고기를 먹은 뒤 생명이 위태로울 정도로 크게 아팠고, 이후 1년 넘게 죽을 먹으며 회복했다고 합니다.

이후 충남 공주에 있는 조부모 집에서 생활했으며, 금학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전국 콩쿠르대회에 출전해 상을 받은 경험도 있습니다. 이후 다시 서울로 올라와 영등포초등학교와 동양중학교를 거쳐 선린상업고등학교에 진학했습니다.

유영춘이 본격적으로 음악인의 길을 꿈꾸게 된 것은 선린상고 재학 시절이었습니다. 학교 인근 화양프로덕션에서 흘러나오는 연주와 음악 소리에 매료된 그는 음악을 하기로 결심했고, 당시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던 비틀스의 음악에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특히 비틀스의 독특한 창법에 매료돼 폴 매카트니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연습했고, 비틀스를 비롯해 롤링스톤스 등 해외 그룹사운드의 음악을 집중적으로 익혔습니다. 하루 8시간 이상 노래를 연습할 정도로 음악에 몰두했다고 합니다.

가수 유영춘 B-19·실버코인즈 활동

선린상고 시절부터 음악에 몰두했던 유영춘은 미8군 무대를 접하면서 본격적인 음악인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아버지가 미8군에서 연주한 경험이 있어 그 문화가 낯설지 않았던 그는 미8군 공연 무대를 찾았다가 노래를 부를 기회를 얻으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고 합니다.

이후 고등학교를 졸업한 유영춘은 학교 인근에 있던 화양프로덕션을 찾아 오디션을 봤고, 그룹사운드 ‘B-19’에 합류하며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B-19는 주로 양주와 포천 운천 일대의 미8군 클럽에서 활동했습니다. 당시 유영춘은 비틀스와 엘비스 프레슬리 등의 노래를 부르며 오픈밴드와 하우스밴드 무대를 오갔고, 까다로운 심사와 공연을 거치며 가수로서 실력을 쌓았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당시 정상급 연주자들이 월 1만 5천 원가량의 출연료를 받을 때 유영춘은 약 3천 원을 받아 하숙비를 내기에도 빠듯했다고 합니다.

결국 생활고와 팀 생활에서 느낀 서운함 등이 겹치면서 B-19를 떠났고, 이후 한동안 집에 머물며 노래 연습에만 몰두했습니다.

이 무렵 유영춘은 키보디스트 장현종의 제안으로 작곡가이자 기타리스트 안치행을 만나게 됩니다. 유영춘은 오디션에서 최고 수준의 평가를 받아 ‘실버코인즈’에 합류했고, 보컬 유영춘과 기타 안치행, 키보드 장현종 등을 중심으로 미8군 무대에서 활동했습니다.

특히 유영춘은 안치행에게서 “그룹은 단순히 악보를 따라 연주하는 밴드와 달리 멤버들의 음악과 호흡이 맞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이 말을 오랫동안 자신의 음악 인생에 중요한 가르침으로 간직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1967년 미8군 송년 공연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던 중 차량이 전복되는 큰 사고를 겪었습니다. 당시 미군 측으로부터 상당한 보상과 악기 지원을 받았지만, 일부 멤버는 더 이상 악기를 연주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치는 등 팀에도 큰 아픔을 남겼습니다.

가수 유영춘 히파이브 He-5 활동

가수 유영춘 리즈

실버코인즈 활동 이후 유영춘은 1968년 김용호, 한웅, 조용남, 한광수와 함께 5인조 그룹사운드 ‘히파이브(He-5)’를 결성했습니다.

‘He-5’라는 이름은 유영춘이 직접 제안한 것으로, 우리말로 ‘다섯 녀석’이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합니다.

멤버들은 서울 합정동에 있던 조용남의 집에서 함께 숙식하며 약 한 달 반 동안 집중적으로 연습했습니다. 레퍼토리를 정하고 작곡과 편곡 작업을 진행하며 하나의 밴드로 호흡을 맞췄고, 이후 명동의 유명 음악 공간이었던 오비스캐빈과 전속계약을 맺으며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습니다.

당시 오비스캐빈은 미8군 무대에서 활동하던 음악인들이 대중 무대로 진출하는 중요한 가교 역할을 했던 곳입니다. 유영춘은 무교동 쎄시봉과 명동 오비스캐빈을 1970년대 대중음악 전성기를 이끈 대표적인 음악 공간으로 회상하기도 했습니다.

히파이브는 오비스캐빈 무대에 오른 뒤 빠르게 인기를 얻었습니다. 미8군 무대에서 익힌 서구 음악을 단순히 따라 하는 데 머물지 않고 한국적인 감성을 더한 록 음악을 선보이며 대중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첫 음반은 가수 양미란과 함께 발표한 스플릿 앨범으로, 히파이브의 대표곡 가운데 하나인 ‘초원’ 등이 수록됐습니다. 이후 크리스마스 캐럴 음반과 쥰시스터스 등과 함께한 스플릿 앨범, 단독 앨범 등을 잇달아 선보였습니다.

특히 히파이브는 1968년 한 해에만 다섯 장의 음반을 발표할 정도로 왕성하게 활동했습니다. 오비스캐빈을 비롯해 종로 라틴쿼터와 이태원 세븐클럽 등과 전속계약을 맺고 바쁜 공연 일정을 소화하며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무대에서는 비틀스의 ‘Hey Jude’와 ‘Let It Be’, 롤링스톤스와 사이먼 앤 가펑클 등 해외 유명 그룹의 곡도 레퍼토리로 선보였습니다. 특히 유영춘과 한웅, 조용남은 서로 다른 음색을 가진 보컬로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소화하며 히파이브만의 색깔을 만들었습니다.

이후 베이스 기타를 맡았던 한광수가 군에 입대하면서 키보이스 출신의 기타리스트 김홍탁이 합류했습니다. 김홍탁이 리드기타를 맡고 기존 리드기타였던 조용남이 베이스로 자리를 옮기면서 히파이브는 새로운 전성기를 준비했습니다.

유영춘은 훗날 안치행과 김홍탁을 자신의 음악 인생에 큰 영향을 준 인물로 꼽았습니다. 안치행이 미8군 무대에서 자신을 이끌어준 선배였다면, 김홍탁은 자신의 음악적 가치를 만들어준 선배였다고 회상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또 다른 멤버가 이민을 떠나면서 히파이브는 결국 해체하게 됩니다.

가수 유영춘 영사운드 등불

가수 유영춘 영사운드

히파이브 해체 이후 유영춘은 다시 안치행과 인연을 맺으며 그가 결성한 그룹사운드 영사운드에 합류했습니다.

그러나 이전부터 이어진 무리한 공연 일정과 건강 관리 부족으로 신경쇠약과 영양실조를 겪었고, 결국 정신을 잃어 거의 식물인간에 가까운 상태에 빠지는 큰 위기를 맞았다고 합니다.

유영춘은 3일 만에 의식을 되찾았지만 자신이 부르던 노래의 멜로디와 가사조차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기억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과거의 많은 기억 역시 희미해졌다고 회상했습니다.

이후 몇 개월 동안 요양하며 노래를 처음부터 다시 배우다시피 연습했고, 어렵게 영사운드 무대로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1972년 유영춘의 음악 인생을 대표하는 곡 ‘등불’을 발표하며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등불’은 당시 큰 인기를 얻으며 영사운드를 대표하는 명곡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유영춘의 회고에 따르면 음반은 약 150만 장의 판매량을 기록했으며, 이후 신중현과 이봉조 등 당대 유명 음악인들로부터 솔로 가수 제안을 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유영춘은 솔로 활동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당시 그는 그룹사운드를 단순히 가수의 노래에 맞춰 연주하는 밴드가 아니라, 오랜 연습을 통해 노래와 연주가 하나의 호흡을 만들어내는 팀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후에도 영사운드는 ‘달무리’, ‘아름다운 계절’ 등을 선보이며 활동을 이어갔고, 유영춘은 1976년 영사운드의 리더를 맡아 그룹을 이끌게 됩니다.

영사운드 유영춘 근황과 음악 인생

가수 유영춘 영사운드

1976년 영사운드의 리더가 된 유영춘은 이후 오랜 세월 그룹을 이끌며 음악 활동을 이어왔습니다.

1991년에는 기타리스트 김홍탁, 아들 유원우와 함께 ‘선생님, 아빠 그리고 나’를 결성해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하기도 했습니다. 세대를 아우르는 구성으로 퓨전 사운드를 선보이며 기존 그룹사운드 활동과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50년이 넘는 음악 인생 동안 꾸준히 음반과 공연 활동을 이어온 유영춘은 2023년 인터뷰 당시 13장의 음반을 발표했으며, 14번째 음반 ‘좋아 죽겠어-콩깍지’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후에도 두 장 정도의 음반을 더 발표하고 싶다는 계획을 전하며 음악에 대한 변함없는 열정을 보여줬습니다.

나이가 든 이후에도 때로는 새벽까지 공연 무대에 설 정도로 꾸준히 노래를 이어왔습니다. 대부분의 노래를 직접 소화해야 해 체력적으로 힘들 때도 있지만, 무대에 서는 시간이 여전히 즐겁고 행복하다고 말했습니다.

유영춘에게는 두 아들이 있습니다. 첫째 아들 유원우는 과거 음악에 관심을 보이며 아버지와 함께 음악 활동을 한 이력이 있지만, 이후에는 음악인의 길을 계속 걷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유영춘은 자신의 오랜 음악 인생을 돌아보며 노래를 ‘나의 인생이자 나의 동반자’라고 표현했습니다.

고등학생 시절 비틀스의 음악에 매료돼 하루 수 시간씩 노래를 연습했던 유영춘은 B-19와 실버코인즈, 히파이브를 거쳐 영사운드의 보컬이자 리더가 됐습니다.

한때 건강 악화로 노래의 멜로디와 가사마저 잊는 큰 위기를 겪었지만 다시 무대로 돌아왔고, ‘등불’이라는 시대의 명곡을 남긴 뒤에도 오랜 세월 그룹사운드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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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유영춘 프로필 나이 고향 가족 키 혈액형 종교 학력 소속사 

가수 유영춘

1970년대 큰 사랑을 받았던 밴드 ‘히파이브(He-5)’와 ‘영사운드’의 전설적인 보컬, 유영춘의 나이는 1946년생으로 올해 나이 80세입니다.

유영춘 고향은 서울 후암동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 충남 공주 등에서 잠시 자라기도 했습니다. 학력은 금학초등학교, 서울 영등포초등학교, 동양중학교, 선린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가족으로는 아버지는 과거 상공부 공무원이셨으며, 아들(유원우) 역시 음악 활동을 함께한 적이 있습니다. 이외에 유영춘 키 혈액형 종교 소속사 등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가수 유영춘 유튜브 채널,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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