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차도균이 ‘가요무대’에 출연합니다.

차도균은 대한민국 1세대 그룹사운드를 대표하는 가수로, 한국 그룹사운드의 효시로 불리는 키보이스의 원년 멤버이자 베이스 기타리스트·보컬로 활동한 인물입니다.
1959년 라디오 가수 선발 프로그램을 통해 가요계에 발을 들인 그는 미8군 무대를 거쳐 윤항기, 차중락, 김홍탁 등과 키보이스를 결성했으며, 이후 가이즈 앤 돌스와 포 다이내믹스 활동, 솔로 가수로 오랜 음악 인생을 이어왔습니다.
특히 ‘그대와 둘이서’, ‘임은 오시려나’ 등 여러 곡을 발표했으며, 가수 활동뿐 아니라 대학 강단에서 후배 음악인들을 가르치는 등 한국 대중음악과 그룹사운드 역사에 오랜 발자취를 남겼는데요.
이번 ‘가요무대’ 출연을 계기로 가수 차도균의 나이와 프로필, 과거 키보이스 활동과 솔로 데뷔, 결혼과 아내, 자녀, 최근 근황 등에도 관심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가수 차도균 어린 시절과 가요계 입문
차도균은 1940년 6월 17일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창종’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6·25 전쟁 휴전 이후인 1953년 말 차도균으로 이름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청소년 시절부터 유난히 민요조의 노래를 잘 불렀다고 하는데요, 차도균이 본격적으로 가요계에 발을 들인 것은 1959년 무렵이었습니다.
당시 라디오 가수 선발 프로그램 ‘스타탄생’에 도전했지만 첫 출전에서는 탈락했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다시 도전해 두 번째 출전에서 장려상에 입선하면서 가수 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후 차도균은 1961년 미8군 언더그라운드 라이브 클럽 무대에 서며 솔로 록 가수로 활동했습니다. 당시 미8군 무대는 서구의 최신 팝과 록 음악을 직접 접할 수 있는 공간이자 한국 그룹사운드 1세대 음악인들이 실력을 쌓던 중요한 무대였습니다.
가수 차도균 키보이스 결성과 활동
차도균은 1963년 윤항기, 차중락, 옥성빈, 김홍탁 등과 함께 5인조 록 밴드 ‘키보이스’를 결성했습니다.
키보이스는 대한민국 초기 그룹사운드를 대표하는 밴드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당시 차도균은 베이스 기타와 보컬을 맡았으며 윤항기가 드럼, 김홍탁이 기타, 옥성빈이 키보드, 차중락이 보컬을 담당했습니다.
초기 키보이스는 영국의 비틀스를 비롯한 해외 인기 밴드의 음악을 연주하며 이름을 알렸습니다. 당시로서는 낯설었던 록 밴드 형태의 무대와 경쾌한 연주를 선보이며 젊은 층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키보이스의 공연 모습은 영화에도 남아 있습니다. 영화 ‘말띠부부’ 등에서 키보이스가 무대 공연을 펼치는 장면이 등장하며, 차도균이 뒤편에서 베이스 기타를 연주하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후 키보이스는 ‘해변으로 가요’, ‘바닷가의 추억’, ‘정든 배’ 등 여러 대표곡을 남기며 한국 그룹사운드 역사에 이름을 남겼습니다. 특히 ‘해변으로 가요’는 오랜 세월 여름철마다 사랑받는 대표적인 시즌송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다만 1960년대 중후반 원년 멤버들이 하나둘 팀을 떠나면서 키보이스 1기의 활동은 사실상 마무리됐습니다. 이후 새로운 멤버들로 구성된 키보이스가 활동을 이어가며 그룹의 이름과 음악을 계승했습니다.
가수 차도균 솔로 데뷔와 포 다이내믹스 활동
키보이스 활동 이후 차도균은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이어갔습니다.
1966년에는 R&B 계열 보컬 그룹 ‘Guys & Dolls’의 보컬리스트로 활동했으며, 1968년 ‘그대와 둘이서’를 발표하며 정식 솔로 가수로 데뷔했습니다.
차도균은 이후 ‘임은 오시려나’, ‘슬픈 노래는 싫어요’ 등 여러 곡을 선보이며 솔로 가수로 활동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른 2014년에는 ‘추억의 건달’을 발표하는 등 꾸준히 자신의 음악을 이어갔습니다.
1974년에는 박상규, 장우, 김준과 함께 남성 프로젝트 보컬 그룹 ‘Four Dynamics’의 멤버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Four Dynamics는 각자의 음악 활동을 펼치던 남성 가수들이 함께한 프로젝트 성격의 보컬 그룹으로, 차도균은 키보이스 시절부터 쌓아온 그룹사운드 경험과 보컬 실력을 바탕으로 또 다른 음악적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차도균은 한국 대중음악 1세대 음악인으로서 후배들에게도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싱어송라이터 김도향과 가수 겸 작곡가 최백호 등도 차도균에게 간접적인 음악적 영향을 받은 인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가수 차도균 교수 활동과 후배 양성
차도균은 가수 활동뿐 아니라 교육자로서 후배 음악인들을 가르치는 일에도 참여했습니다.
서울예술전문대학 실용음악학과 겸임교수를 비롯해 동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 강사, 추계예술대학교 음악학과 겸임교수 등을 지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미8군 무대에서 음악 활동을 시작해 한국 그룹사운드의 초창기를 직접 경험한 차도균은 오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후배 음악인들에게 자신의 음악적 경험을 전했습니다.
가수 차도균 키보이스 재결성 근황
오랜 시간 솔로 가수와 음악 교육자로 활동해온 차도균은 다시 키보이스의 이름으로 무대에 서기도 했습니다.
2018년에는 40~50대 음악인 4명을 새롭게 영입해 약 50년 만에 키보이스 활동을 재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원년 멤버로 한국 그룹사운드의 시작을 함께했던 차도균이 새로운 세대의 음악인들과 다시 키보이스를 구성했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습니다.
1959년 라디오 가수 선발 프로그램을 통해 가요계에 발을 들인 차도균은 미8군 무대와 키보이스를 거쳐 솔로 가수, 프로젝트 보컬 그룹 멤버, 음악 교육자로 오랜 시간 활동해왔습니다.
특히 한국 그룹사운드의 효시로 불리는 키보이스의 원년 멤버로 베이스 기타와 보컬을 맡았던 그는 2018년 다시 키보이스 활동을 재개하며 자신의 음악적 뿌리를 이어갔는데요, 오랜 세월 한국 대중음악과 함께해온 원로 가수 차도균의 근황과 활동에도 관심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가수 차도균 결혼 아내(부인) 자녀
차도균은 결혼해 가정을 꾸렸으며 슬하에 두 자녀를 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차도균 아내의 이름과 나이, 직업 등 구체적인 신상은 대외적으로 크게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오랜 시간 가수로 활동해왔지만 가족의 사생활은 방송이나 언론을 통해 적극적으로 공개하지 않은 편입니다.
과거 알려진 내용에 따르면 차도균의 두 자녀는 호주 시드니에서 유학 생활을 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차도균 역시 자녀들을 만나기 위해 시드니를 자주 찾을 만큼 남다른 자녀 사랑을 보였다고 합니다.
가수 차도균(키보이스) 프로필 나이 고향 가족 키 혈액형 종교 학력 소속사
가수 차도균의 본명은 차도균입니다. 차도균의 유년기 아명은 창종으로 불리다가 한국전쟁 휴전 후 1953년말 서울지방법원 개명 절차로 차도균으로 개명되었다고 합니다.
차도균 나이는 1940년 6월 17일생으로 올해 나이 83세입니다. 차도균 고향은 일제강점기 경성부이며, 가족으로는 아내와 자녀가 있습니다.
차도균 종교는 개신교이며, 학력은 서울 경복중학교, 서울 경복고등학교, 한양공과대학교 산업공학과 중퇴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외에 차도균 키 혈액형 등과 구체적인 가족 정보에 대해서는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참고로 사촌 남동생 차중락, 차중광이 있고, 5촌 조카로 차승우가 있습니다.
차중락은 키보이스에서 차도균과 함께 활동한 가수로, 이후 솔로 가수로 나서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을 크게 히트시키며 ‘한국의 엘비스’로 불릴 만큼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1968년 26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차중락의 친동생 차중광 역시 가수로 활동했습니다. 형이 세상을 떠난 뒤 가수로 데뷔해 ‘영원한 나의 집’, ‘낙엽따라 왜 갔나’, ‘내 사랑 미나’ 등의 노래를 발표했으며, 2020년 향년 75세로 별세했습니다.
차중광의 아들 차승우도 음악인의 길을 걸었습니다. 록 밴드 노브레인의 원년 멤버이자 기타리스트로 활동했으며, 이후 더 문샤이너스 등 여러 밴드에서 활동하며 집안의 음악적 계보를 이어갔습니다.
<함께 보면 좋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