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고태용 쇼핑몰 과거, 신발 카피 고백부터 비욘드클로젯 성공까지

패션 디자이너 고태용의 성공 과정이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남성복 브랜드 ‘비욘드클로젯’을 이끄는 고태용은 2008년 서울컬렉션 최연소 디자이너로 데뷔한 이후 뉴욕과 파리 등 해외 패션 무대까지 진출하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패션 디자이너 가운데 한 명으로 자리 잡았는데요,

하지만 처음부터 화려한 패션 엘리트 코스를 밟았던 것은 아닙니다.

뒤늦게 의상 공부를 시작한 그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쇼핑몰에서 일하며 돈을 벌었고, 당시 유명 브랜드 신발을 카피한 제품을 만들어 판매했던 과거도 솔직하게 고백한 바 있습니다.

예상보다 큰돈을 벌었지만, 오히려 그 경험을 통해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은 ‘돈을 많이 버는 일’이 아니라 ‘패션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하는데요,

이후 돈을 벌던 일을 정리하고 졸업과 동시에 서울컬렉션에 도전한 고태용은 싸이월드에서 자신의 준비 과정을 공개하며 사람들을 모았고, 마침내 비욘드클로젯을 론칭해 자신만의 패션 세계를 만들어갔습니다.

그렇다면 고태용은 쇼핑몰에서 어떤 일을 했으며, 신발 카피 제품을 판매했던 경험은 어떻게 디자이너의 길로 이어졌을까요?

이번 글에서는 디자이너 고태용의 쇼핑몰 과거부터 서울컬렉션 도전, 비욘드클로젯 론칭과 프레피룩, ‘국민 개티’ 성공까지 자세히 정리해 보겠습니다.

디자이너 고태용 쇼핑몰 과거, 신발 카피 고백부터 비욘드클로젯 성공까지

패션 디자이너 고태용, 뒤늦게 시작한 패션 공부

고태용은 처음부터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며 성장한 것은 아닙니다.

고등학교 시절 자신의 표현을 빌리면 특별한 목표 없이 ‘그냥 놀았던’ 학생이었고, 대학 역시 처음에는 패션과 무관한 전공으로 진학했다고 합니다.

이후 군 복무를 마치고 진로를 고민하던 고태용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옷과 패션에 관심이 있었던 그는 결국 가톨릭대학교 의상학과 3학년으로 편입하며 뒤늦게 패션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당시 고태용에게 패션은 어렵고 복잡한 학문이라기보다 자신이 상상한 것을 직접 만들어내는 재미있는 ‘놀이’에 가까웠다고 합니다.

잡지나 매장에서 마음에 드는 옷을 보면 자신이라면 어떻게 만들지 상상했고, 머릿속에 떠올린 이미지를 실제 옷으로 완성하는 과정에 빠져들었습니다.

다만 다른 학생들보다 늦게 의상 공부를 시작한 만큼 부족한 부분도 많았습니다. 특히 패션 이론과 전문적인 작업 과정에서는 스스로 부족함을 느꼈지만, 이를 따라잡기 위해 늦은 시간까지 작업하며 자신의 실력을 키워갔다고 합니다.

이렇게 뒤늦게 시작한 패션 공부는 고태용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는 계기가 됐습니다.

쇼핑몰에서 신발을 팔며 큰돈을 벌었던 고태용

대학 졸업을 앞둔 시기, 고태용은 패션 디자이너의 길로 곧장 뛰어들기보다 돈을 벌기 위해 쇼핑몰 일을 경험했습니다.

당시 그는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생각이 컸고, 쇼핑몰을 운영하던 지인을 따라 부산으로 내려가 함께 일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유명 브랜드 신발을 카피한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기도 했는데요, 고태용은 훗날 인터뷰를 통해 당시의 일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잘못된 행동이었다는 점도 인정했습니다.

그런데 판매를 시작한 신발이 예상보다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제품이 빠르게 팔리면서 상당한 돈을 벌게 됐고, 젊은 나이에 사업으로 돈을 버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돈을 벌수록 고태용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자신이 정말 원했던 삶이 단순히 물건을 많이 팔아 돈을 버는 것인지, 아니면 직접 자신의 이름을 걸고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가 되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고태용은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패션 디자이너가 되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잘되던 쇼핑몰 일을 뒤로한 채 자신의 꿈을 선택했습니다.

이 선택은 훗날 비욘드클로젯의 시작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인생의 전환점이 됐습니다.

디자이너 고태용 돈 대신 꿈을 선택, 서울컬렉션에 도전하다

쇼핑몰 일을 정리한 고태용은 본격적으로 패션 디자이너의 길에 뛰어들었습니다.

당시 패션계에서는 해외 유학 경험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인식이 강했지만, 고태용은 졸업과 동시에 국내 디자이너들의 꿈의 무대로 불리던 서울컬렉션에 도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이름 없는 신인 디자이너가 혼자 컬렉션을 준비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이에 고태용은 당시 유행하던 싸이월드에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는 한 청년의 이야기’를 주제로 클럽을 만들고, 원단을 구입하고 스케치하며 패션쇼를 준비하는 모든 과정을 공개했습니다.

고태용의 솔직한 도전기에 공감한 패션 지망생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고, 클럽 회원은 약 700명까지 늘어났다고 합니다.

마침내 서울패션위크 포스터에 고태용의 이름이 올라가자 회원들은 자신의 일처럼 함께 기뻐했고, 첫 패션쇼에는 1천 명이 넘는 관객이 찾아올 만큼 뜨거운 관심을 받았습니다.

이후 고태용은 2008년 남성복 브랜드 ‘비욘드클로젯(Beyond Closet)’을 론칭하고 서울컬렉션 최연소 디자이너로 데뷔하며 오랫동안 꿈꿔왔던 패션 디자이너의 길을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했습니다.

첫 패션쇼의 현실, 일주일 만에 샘플 세일을 열다

서울컬렉션 최연소 디자이너로 데뷔하며 화려한 첫발을 내디뎠지만, 고태용이 마주한 현실은 생각과 달랐습니다.

고태용은 처음에는 패션쇼에서 좋은 반응을 얻으면 곧바로 바이어들의 주문이 이어지고 자신의 옷이 매장에서 판매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패션쇼에서 컬렉션을 공개한 뒤 실제 제품이 생산돼 매장에 나오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무엇보다 아직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신인 디자이너의 옷을 소비자들이 오랫동안 기다려줄지도 고민이었다고 하는데요,

결국 고태용은 첫 쇼가 끝난 지 불과 일주일 만에 샘플 세일을 열었습니다.

패션쇼에 사용했던 컬렉션 의상을 직접 판매해 제작 원가를 회수했고, 이 과정에서 단순히 멋진 옷을 만드는 것만큼 자신이 만든 옷을 어떻게 대중에게 보여주고 판매할 것인지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화려한 데뷔 이후 곧바로 현실적인 벽과 마주했지만, 고태용은 좌절하기보다 빠르게 방법을 찾았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이후 비욘드클로젯을 하나의 브랜드로 성장시키는 중요한 밑거름이 됐습니다.

두 번째 컬렉션, 프레피룩으로 비욘드클로젯의 색깔을 찾다

고태용에게 본격적인 전환점이 된 것은 두 번째 컬렉션이었습니다.

첫 컬렉션 이후 자신만의 색깔에 대해 고민하던 그는 어린 시절 일기장을 다시 펼쳐봤고, 학창 시절의 기억에서 새로운 영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선보인 것이 바로 아메리칸 클래식 감성을 담은 프레피룩이었습니다.

소년스러운 분위기와 클래식한 스타일, 여기에 고태용 특유의 위트 있는 감각을 더한 컬렉션은 좋은 반응을 얻었고, 비욘드클로젯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찾는 계기가 됐습니다.

고태용 역시 2009 S/S 두 번째 컬렉션을 가장 기억에 남는 패션쇼 가운데 하나로 꼽은 바 있는데요,

이후 비욘드클로젯은 컬러풀한 색감과 그래픽, 클래식한 프레피 스타일에 소년적인 감성을 결합한 디자인을 자신만의 정체성으로 발전시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프레피룩의 성공은 뜻밖의 기회로 이어졌습니다. 바로 큰 인기를 얻은 드라마 ‘꽃보다 남자’ 의상 작업이었습니다.

‘꽃보다 남자’ 의상 작업, 비욘드클로젯을 알린 기회

프레피룩으로 자신만의 색깔을 찾은 고태용에게 또 하나의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당시 큰 인기를 모은 드라마 ‘꽃보다 남자’ 의상 작업에 참여하게 된 것인데요, 극 중 화려한 학교생활과 젊은 캐릭터들의 분위기에 프레피 스타일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면서 고태용의 디자인 역시 대중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드라마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 비욘드클로젯의 인지도도 점차 높아졌습니다. 이후 고태용은 전국 여러 고등학교의 교복 디자인을 맡는 등 프레피룩을 기반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갔습니다.

서울컬렉션 무대에서 자신의 색깔을 찾기 위해 고민했던 신인 디자이너는 점차 대중문화와 패션을 연결하는 디자이너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우연히 만든 강아지 티셔츠, ‘국민 개티’가 되다

비욘드클로젯을 대중적인 브랜드로 성장시킨 결정적인 아이템은 강아지 그래픽을 활용한 I.L.P(I Love Pet) 라인이었습니다.

일명 ‘개티’라고 불린 이 제품은 처음부터 대박을 예상하고 만든 것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고태용은 팝업스토어를 준비하던 중 스웨트 셔츠에 다양한 패치워크 디자인을 넣는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그 가운데 하나로 강아지 모티브를 활용했습니다.

처음 제품을 완성했을 때만 해도 고태용 자신 역시 성공 가능성에 반신반의했다고 하는데요, 몇 달이 지나면서 강아지 그래픽 스웨트 셔츠가 빠르게 팔리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연예인과 젊은 소비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으며 비욘드클로젯을 대표하는 시그니처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고, ‘국민 개티’라는 별명까지 얻게 됐습니다.

흥미롭게도 해당 강아지 디자인은 고태용의 반려견 ‘체크’를 모델로 만든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고태용은 과거 인터뷰에서 반려견을 직접 모델로 만든 디자인은 아니라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전현무 티셔츠 품절까지, 비욘드클로젯의 성공

‘국민 개티’의 인기는 방송에서도 이어졌습니다.

고태용은 최근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서 과거 전현무가 비욘드클로젯의 프렌치 불독 티셔츠를 입은 뒤 뜻밖의 품절 대란이 벌어졌던 일화를 공개했습니다.

당시 티셔츠가 수백 장 판매되며 빠르게 품절됐고, 고태용은 전현무의 어떤 점이 소비자들의 구매를 이끌었는지 아직도 회사 창립 이래 최대 미스터리라는 취지로 말해 웃음을 안겼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여러 화제와 인기가 쌓이면서 비욘드클로젯은 디자이너 컬렉션 브랜드를 넘어 대중에게 친숙한 패션 브랜드로 성장했습니다.

고태용은 이후 컬렉션 라인과 대중적인 세컨드 라인, 비즈니스 캐주얼 등 서로 다른 성격의 레이블을 전개하며 브랜드의 영역을 넓혔습니다.

한때 쇼핑몰에서 신발을 팔며 돈을 벌었던 청년은 결국 자신이 진짜 하고 싶었던 패션을 선택했고, 서울컬렉션 최연소 데뷔를 거쳐 ‘국민 개티’를 탄생시킨 디자이너로 성장했습니다.

돈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선택했던 고태용의 결정은 비욘드클로젯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어낸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었던 셈입니다.

뉴욕과 파리로 향한 고태용, K-패션을 알리다

국내에서 비욘드클로젯의 이름을 알린 고태용은 해외 패션 시장에도 적극적으로 도전했습니다.

2013년부터 뉴욕 패션위크에 참여하며 글로벌 무대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이후 이탈리아 피티 우오모와 파리 패션위크, 상하이 패션위크 등 다양한 해외 패션 행사에 참가하며 활동 영역을 넓혔습니다.

특히 해외 진출에는 국내 컬렉션보다 훨씬 많은 비용과 노력이 필요했다고 하는데요, 고태용은 뉴욕 컬렉션에 서울컬렉션의 약 4배에 달하는 비용을 투자할 만큼 해외 시장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다고 합니다.

홍콩 센터 스테이지에는 한국 대표 디자이너로 초청돼 컬렉션을 선보였으며, 일본 매장 진출을 준비하는 등 비욘드클로젯을 해외에 알리기 위한 도전도 이어갔습니다.

고태용은 새로운 환경에 도전할 때 오히려 패션에 대한 설렘과 에너지를 다시 얻는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패션을 넘어 라이프스타일까지, 수십 차례 협업

비욘드클로젯이 성장하면서 고태용의 활동 영역도 옷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양한 기업 및 브랜드와 수십 차례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하며 자동차와 화장품, 라이프스타일 분야까지 디자인 영역을 확장했습니다.

특히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와 진행한 ‘스마트 컬래버레이션 by 고태용’에서는 자동차 패턴 디자인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국내 5대 한정 차량에 자신의 디자인 감성을 담으며 패션 디자이너의 아이디어를 자동차로 확장한 것입니다.

고태용은 과거 인터뷰에서 협업의 가장 큰 매력으로 머릿속에서 상상했던 것이 실제 제품으로 구현되는 순간을 꼽았습니다.

옷만 만드는 디자이너에 머무르기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분야에 패션과 디자인을 연결해 온 셈입니다.

100억 원대 매출 브랜드로 성장한 비욘드클로젯

이러한 도전 속에서 비욘드클로젯은 국내를 대표하는 디자이너 브랜드 가운데 하나로 성장했습니다.

브랜드의 연간 최고 매출은 100억 원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으며, 특히 강아지 그래픽을 활용한 I.L.P 라인은 비욘드클로젯의 대중적인 성공을 이끈 대표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고태용은 컬렉션에서는 자신이 만들고 싶은 디자인을 타협 없이 보여주는 한편, 대중적인 라인에서는 소비자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트렌드와 요구를 반영하는 방식으로 브랜드를 운영해 왔습니다.

또 30~40대를 겨냥한 비즈니스 캐주얼 라인 등 서로 다른 콘셉트의 레이블을 전개하며 소비자층을 넓혔습니다.

처음에는 패션쇼가 끝난 지 일주일 만에 샘플 세일을 열어 제작비를 회수해야 했던 신인 디자이너였지만, 결국 자신만의 브랜드를 100억 원대 매출 규모로 성장시킨 것입니다.

디자이너 고태용 쇼핑몰 과거에서 비욘드클로젯 성공까지

고태용의 패션 인생은 처음부터 계획대로 흘러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뒤늦게 의상학과에 편입해 패션 공부를 시작했고, 졸업을 앞두고는 돈을 벌기 위해 쇼핑몰에서 일했습니다. 유명 브랜드 신발을 카피한 제품을 판매해 큰돈을 벌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 경험을 통해 자신이 진짜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이후 돈을 벌던 일을 내려놓고 서울컬렉션에 도전했고, 싸이월드를 통해 자신의 꿈과 준비 과정을 사람들과 공유했습니다.

첫 패션쇼 이후에는 현실적인 어려움과 마주했지만 샘플 세일이라는 방법을 찾아냈고, 두 번째 컬렉션에서 프레피룩이라는 자신만의 색깔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꽃보다 남자’ 의상 작업과 우연히 탄생한 ‘국민 개티’의 성공을 거쳐 비욘드클로젯을 국내외에서 이름을 알린 브랜드로 성장시켰습니다.

고태용은 과거 자신의 책을 쓴 이유에 대해 디자이너를 꿈꾸는 이들에게 ‘어렵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집이 부유하지 않아도,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해도 자신처럼 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는 것인데요,

쇼핑몰에서 돈을 벌던 과거를 뒤로하고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일을 선택한 고태용. 그의 성공 과정은 비욘드클로젯이 단순한 패션 브랜드를 넘어 고태용 자신의 도전과 성장 과정이 담긴 브랜드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편 고태용과 배우 이종석의 첫 만남, 87크루 뜻과 멤버, 모델 김원중과의 특별한 인연은 별도 글에서 자세히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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