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디자이너 고태용이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서 모델 정혁과 함께 특별한 동묘 패션 투어에 나섭니다.

고태용은 남성복 브랜드 비욘드클로젯을 이끄는 대한민국 대표 패션 디자이너로, 2008년 서울패션위크 최연소 디자이너로 데뷔한 이후 뉴욕과 파리 등 해외 무대에서도 활약해 왔는데요,
오늘 방송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뮤즈였다는 이경규를 위해 반려견을 모티브로 제작한 세상에 단 한 벌뿐인 ‘이경규 개티’를 선물해 눈길을 끌 예정입니다.
이어 모델 정혁과 함께 K-패션의 성지로 불리는 동묘를 찾아 천원짜리 셔츠부터 명품 코트까지 숨은 패션 아이템을 찾아 나선다고 하는데요, 특히 동묘 골목을 즉석 런웨이로 만든 두 사람의 패션쇼도 공개될 예정이라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그럼 이번 글에서는 패션 디자이너 고태용의 나이와 학력, 집안과 부모님, 어린 시절부터 패션을 시작한 계기, 쇼핑몰 과거와 비욘드클로젯 성공 과정, 결혼과 아내, 자녀, 최근 근황까지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고태용 프로필 나이 고향 가족 키 혈액형 종교 학력 소속사
패션 디자이너 고태용은 1981년 7월 28일생으로 올해 나이 44세입니다. 고향은 대한민국 출생으로 알려져 있으나 구체적인 출생 지역은 대외적으로 명확하게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고태용 가족으로는 부모님과 누나가 있으며, 결혼 후 아내와 가정을 꾸렸습니다. 다만 아내를 비롯한 가족들의 구체적인 신상은 자세히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고태용의 키와 혈액형, 종교 역시 공식적으로 확인된 정보는 알려진 바 없습니다. 학력은 인제고등학교를 거쳐 가톨릭대학교 의상학과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 남성복 브랜드 비욘드클로젯(Beyond Closet)의 대표이자 패션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으며, 별도의 연예기획사 소속 정보보다는 자신의 브랜드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08년 비욘드클로젯을 론칭한 이후 서울과 뉴욕, 파리 등 국내외 패션 무대에서 꾸준히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패션 디자이너 고태용 집안과 어린 시절
고태용은 비교적 보수적인 가정환경에서 성장했습니다. 누나는 명문대를 졸업했고 어머니는 교직에 있었으며, 아버지는 상당히 엄격한 성격이었다고 합니다.
고태용은 과거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무서워 집에서는 순하게 생활했지만, 밖에서는 친구들과 어울려 놀며 다소 다른 모습을 보였다고 회상했습니다.
실제 자신의 고등학교 시절에 대해서도 “그냥 놀았다”고 솔직하게 말할 정도로 처음부터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며 체계적으로 준비한 학생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어린 시절부터 주목받는 것을 좋아하고 리더십이 강해 학급 대표를 맡기도 했으며,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는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성격이었다고 합니다.
패션 디자이너 고태용 학창 시절과 뒤늦게 시작한 패션 공부
고태용은 처음부터 의상학을 전공한 것은 아닙니다. 패션과 무관한 학과에 진학한 뒤 군 복무를 마쳤고, 이후 진로를 다시 고민하면서 가톨릭대학교 의상학과 3학년으로 편입했습니다.
당시 그는 패션을 어렵고 전문적인 학문이라기보다 자신이 즐길 수 있는 ‘놀이’처럼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잡지나 매장에서 예쁜 옷을 보면 자신이 만들고 싶은 옷을 상상했고, 그 생각을 실제 디자인으로 구현하는 과정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학부 시절에는 지금과 전혀 다른 아방가르드 스타일에 빠져 릭 오웬스와 같은 디자이너의 영향을 받은 옷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론적인 부분에서는 늦게 패션 공부를 시작한 만큼 부족함을 느꼈고, 이를 따라잡기 위해 누구보다 늦게까지 작업하며 자신의 실력을 키워갔다고 합니다.
쇼핑몰에서 신발을 팔았던 고태용의 과거
대학 졸업을 앞둔 시기 고태용에게는 인생의 방향을 바꾼 특별한 경험도 있었습니다.
당시 돈을 많이 벌고 싶었던 그는 쇼핑몰을 운영하던 지인을 도와 부산에서 함께 일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유명 브랜드 신발을 카피한 제품을 만들어 판매한 적이 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해당 제품은 예상보다 큰 인기를 얻었고 상당한 돈을 벌 수 있었다고 합니다. 고태용 역시 과거의 행동이 잘못됐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이 경험을 통해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고 밝혔습니다.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은 단순히 돈을 많이 버는 일이 아니라 패션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돈을 벌 수 있었던 일을 정리하고 본격적으로 디자이너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패션 디자이너 고태용 졸업과 동시에 서울컬렉션에 도전
고태용은 대학 졸업과 동시에 당시 국내 디자이너들에게 꿈의 무대였던 서울컬렉션에 도전했습니다.
당시 패션계에는 해외 유학을 다녀와야 성공할 수 있다는 인식이 강했지만, 고태용은 국내에서 공부한 자신의 경력을 약점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서울컬렉션 무대에 서는 것을 명확한 목표로 정했습니다.
그는 당시 유행하던 싸이월드에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는 한 청년의 이야기’를 주제로 클럽을 만들고, 원단을 구입하고 스케치를 하는 등 컬렉션을 준비하는 전 과정을 공개했습니다.
이 이야기에 공감한 패션 지망생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고, 회원 수는 약 700명까지 늘어났습니다. 결국 고태용이 서울패션위크 포스터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자 회원들도 함께 기뻐했고, 첫 패션쇼에는 1천 명이 넘는 관객이 찾아온 것으로 전해집니다.
패션 디자이너 고태용 2008년 비욘드클로젯 론칭과 최연소 디자이너 데뷔
고태용은 2008년 남성복 브랜드 ‘비욘드클로젯(Beyond Closet)’을 론칭하고 서울컬렉션 최연소 디자이너로 데뷔했습니다.
비욘드클로젯은 다양한 컬러와 위트 있는 그래픽, 소년스러운 감성을 앞세운 남성복 브랜드로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첫 패션쇼 이후 현실은 생각처럼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패션쇼에 옷을 선보이면 곧바로 바이어와 계약하고 제품이 팔릴 것으로 기대했지만, 실제로는 컬렉션 제품이 매장에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인지도가 낮은 신인 디자이너의 옷을 소비자들이 기다려줄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컸습니다. 결국 그는 첫 쇼가 끝난 지 일주일 만에 샘플 세일을 열어 컬렉션 의상을 판매했고, 이를 통해 제작 원가를 회수했습니다.
프레피룩으로 비욘드클로젯의 색깔을 찾다
비욘드클로젯의 정체성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은 것은 두 번째 컬렉션부터였습니다.
고태용은 어린 시절 일기장에서 영감을 받아 학창 시절의 추억을 쇼에 담았고, 프레피 스타일을 선보였습니다. 당시 첫 번째로 선보인 프레피룩 패션쇼가 큰 반응을 얻으면서 브랜드가 나아갈 방향을 찾게 됐다고 합니다.
이후 비욘드클로젯은 다양한 컬러와 감각적인 그래픽, 클래식한 프레피 스타일과 소년스러운 분위기를 결합한 디자인을 브랜드의 대표적인 색깔로 발전시켰습니다.
특히 강아지 그래픽을 활용한 I.L.P(I Love Pet) 라인이 큰 인기를 얻으며 대중적으로도 비욘드클로젯의 이름을 알렸습니다.
‘꽃보다 남자’ 의상부터 뉴욕 패션위크까지
고태용에게 또 하나의 전환점은 드라마 ‘꽃보다 남자’였습니다.
프레피룩 컬렉션이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드라마 의상 작업에 참여하게 됐고, 작품의 큰 성공과 함께 고태용과 비욘드클로젯의 인지도 역시 높아졌습니다.
전국 여러 고등학교의 교복 디자인을 맡기도 했으며, 배우와 모델들의 의상 작업을 통해 대중문화와 패션을 연결하는 디자이너로 활동 영역을 넓혔습니다.
이후 뉴욕 패션위크를 비롯해 파리 패션위크, 피티 우오모, 상하이 패션위크 등 해외 무대로 활동 영역을 확장했습니다.
특히 뉴욕에서는 닉 우스터 등 해외 패션 관계자들이 그의 쇼에 관심을 보이며 비욘드클로젯을 알리는 계기가 됐습니다. 고태용은 뉴욕 컬렉션에 서울컬렉션의 약 4배에 달하는 비용을 투자할 정도로 해외 시장 진출에 적극적이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방송·저서·다양한 협업으로 활동 영역 확대
고태용은 패션 디자이너 활동과 함께 방송에서도 꾸준히 얼굴을 알렸습니다.
‘탑 디자이너 2013’, ‘패션왕 코리아2’, ‘THE 프렌즈 in 타이완’, ‘패션왕 비밀의 상자’, ‘넥스트 레이블’ 등에 출연했으며, 패션 디자이너로 성장한 자신의 경험을 담은 저서를 통해 도전과 브랜드 철학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화보와 일러스트 작업, 다양한 브랜드와의 협업에도 참여했습니다. 패션을 의류에만 한정하지 않고 자전거, 스마트 기기 등 라이프스타일 분야와의 협업을 시도하며 비욘드클로젯의 영역을 넓혀왔습니다.
패션 디자이너 고태용 최근 근황
최근에도 고태용은 비욘드클로젯의 대표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새로운 컬렉션과 다양한 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008년 브랜드를 시작한 이후 서울을 넘어 뉴욕과 파리 등 해외 패션 무대에 진출했고, 오랜 시간 자신만의 프레피 감성과 위트 있는 그래픽을 발전시키며 국내 대표 남성복 디자이너 가운데 한 명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2026년에는 KBS2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 출연하며 패션 디자이너이자 브랜드를 이끄는 ‘보스’의 일상을 공개하고 있습니다. 후배 모델들과 함께하는 패션 현장과 디자이너로서의 일상이 공개되며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특히 고태용과 이종석의 인연은 두 사람이 지금처럼 유명해지기 전부터 시작됐습니다. 고태용은 쇼핑몰에서 일하던 시절 중학교 3학년이었던 이종석을 처음 만났으며, 당시부터 그를 ‘완벽한 피사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는데요.
이후 고태용의 패션쇼에는 이종석뿐만 아니라 김원중을 비롯한 여러 모델들이 함께하며 오랜 인연을 이어왔습니다. 고태용과 이종석의 첫 만남부터 87크루 뜻과 멤버, 김원중과의 특별한 관계는 아래 글에서 자세히 정리했습니다.
한때 패션과 무관한 전공에서 출발해 뒤늦게 의상학과로 편입하고, 졸업과 동시에 서울컬렉션에 도전했던 고태용.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자신이 진짜 원하는 일이 패션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뒤 디자이너의 길을 선택했고, 현재까지 비욘드클로젯을 이끌며 자신의 색깔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패션 디자이너 고태용 결혼 아내(부인) 나이 직업 자녀
고태용은 결혼한 기혼자로, 오랜 시간 교제해 온 연인과 결혼해 가정을 꾸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태용은 결혼 소식을 전하며 대학 시절부터 만나온 연인과 한 가정을 이루게 됐다는 사실을 직접 알린 바 있는데요, 두 사람은 고태용이 본격적으로 패션 디자이너로 이름을 알리기 전부터 오랜 인연을 이어온 것으로 전해집니다.
고태용의 아내는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에 따라 아내의 이름과 나이, 직업 등 구체적인 신상 정보는 대외적으로 자세히 공개되지 않았으며, 고태용 역시 가족의 사생활을 적극적으로 공개하는 편은 아닙니다.
특히 과거 고태용은 인터뷰에서 미래의 가정을 언급하며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당시 그는 10년 뒤 자신의 모습을 묻는 질문에 멋진 아빠가 되어 있으면 좋겠다며, 아이가 학교에 갔을 때 다른 사람들의 눈에도 멋진 남자로 보이는 아빠가 되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세계적인 디자이너 알렉산더 왕이 조카를 위해 직접 옷을 만들어주는 모습을 보며 자신 역시 아이가 생긴다면 더욱 유명해져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고 싶다는 이야기도 전했습니다.
다만 고태용의 자녀와 관련해서는 이름이나 나이 등 구체적인 가족 정보가 대외적으로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확인되지 않은 자녀 정보를 단정하기보다는, 고태용이 가족의 사생활을 비교적 조용히 지켜오고 있는 것으로 정리하는 것이 적절해 보입니다.
대학 시절부터 오랜 인연을 이어온 연인과 가정을 꾸린 고태용. 과거 인터뷰에서 꿈꿨던 ‘멋진 남자이자 자랑스러운 아빠’에 대한 그의 바람 역시 현재의 삶과 함께 다시 한번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패션 디자이너 고태용 수입·재산
고태용의 정확한 연봉이나 개인 수입, 재산 규모는 공식적으로 공개된 바 없습니다. 다만 그가 이끄는 비욘드클로젯의 성장과 매출을 통해 상당한 사업 성과를 거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비욘드클로젯은 연간 최고 매출 100억 원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으며, 강아지 그래픽을 활용한 I.L.P 라인, 일명 ‘개티’가 밀리언셀러를 기록할 만큼 큰 인기를 얻으며 브랜드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후 온라인 패션 플랫폼과 백화점, 해외 시장으로 유통망을 넓혔으며 다양한 기업 및 브랜드와의 협업도 꾸준히 이어왔습니다.
고태용의 주요 수입원 역시 브랜드 운영과 디자인 활동을 비롯해 컬래버레이션, 방송 출연, 강연, 저서 활동 등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다만 고태용 명의의 부동산이나 건물, 금융자산 등 구체적인 개인 재산은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정확한 재산 규모를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100억 원대 연 매출을 기록한 브랜드를 오랫동안 이끌어온 만큼 패션 사업을 통해 탄탄한 경제적 기반을 마련한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