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송창식이 힘들었던 어린 시절과 쎄시봉 가수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공개합니다.

9월 5일 방송되는 MBN ‘김주하의 데이앤나잇’에는 가수 송창식과 정미조가 게스트로 출연하는데요, 이날 송창식은 음악가를 꿈꾸며 서울예고에 진학했던 학창시절부터 학교를 그만둔 뒤 약 2년 동안 노숙생활을 했던 사연, 그리고 밥을 준다는 말에 쎄시봉을 찾아갔다가 가수의 길을 걷게 된 이야기를 털어놓습니다.
1947년생인 송창식은 어느덧 만 79세가 됐지만 ‘고래사냥’, ‘왜 불러’, ‘담배가게 아가씨’, ‘피리 부는 사나이’ 등 수많은 명곡을 남긴 한국 대중음악의 대표적인 싱어송라이터로 지금까지 꾸준히 음악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화려한 전성기 뒤에는 한국전쟁으로 가족과 헤어지고 어려운 형편 속에서 음악가의 꿈을 키워야 했던 힘겨운 어린 시절도 있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가수 송창식의 나이와 프로필부터 집안과 부모, 어린 시절, 서울예고 중퇴와 노숙생활, 쎄시봉·트윈폴리오 데뷔, 전성기와 대마초 파동 당시의 오해, 최근 근황까지 차례로 정리해보겠습니다.
가수 송창식 프로필 나이 고향 가족 키 혈액형 종교 학력 소속사
송창식은 1947년 2월 22일생으로 2026년 현재 만 79세입니다. 고향은 당시 경기도 인천부 신흥정, 현재의 인천광역시 중구 신흥동이며, 오랫동안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에 거주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가족으로는 아내 한성숙 씨와 자녀 2남 1녀가 있습니다. 자녀는 장남 송결, 장녀 송무늬, 차남 송빛터로 알려져 있습니다.
송창식의 키는 약 175cm이며, 학력은 인천신흥초등학교와 인천중학교를 거쳐 서울예술고등학교 성악과에 진학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던 송창식은 서울예고에 뛰어난 성적으로 입학했지만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정상적으로 학교생활을 이어가지 못했습니다.
이 때문에 한때 홍익대학교 출신으로 잘못 알려지는 등 학력을 둘러싼 이야기도 있었는데요. 송창식은 실제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으며, 서울예고 역시 실질적으로는 학업을 중단했지만 학적상 졸업으로 처리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과거 쎄시봉 시절에는 이러한 복잡한 학력 문제로 조영남과 오해가 생겼던 일화를 방송에서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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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송창식 집안 부모 어린 시절
송창식은 1947년 2월 2일 인천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한국전쟁을 겪으며 아버지를 잃고 이후 어머니와도 떨어져 지내게 되면서 여동생과 함께 외조부모의 손에서 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가정형편은 넉넉하지 않았지만 송창식은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남다른 관심과 재능을 보였습니다.
특히 우연히 오케스트라 연주를 접한 뒤 클래식 음악에 매료됐고, 장차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됐다고 합니다.
학업 성적도 우수해 주변에서는 제물포고등학교에 진학해 대학에 가기를 바랐지만, 송창식은 음악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서울예술고등학교 진학을 선택했습니다.
가수 송창식 서울예고 입학, 음악 천재가 경험한 좌절
송창식은 중학교 시절 음악콩쿠르 입상 경력을 바탕으로 서울예술고등학교 성악과에 진학했습니다.
하지만 어렵게 들어간 예고에서 오히려 처음으로 큰 좌절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전문적인 음악교육을 받은 학생들과 경쟁하면서 자신의 실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송창식은 9월 5일 방송되는 MBN ‘김주하의 데이앤나잇’에서도 당시를 회상하며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였는지 알게 됐다”고 털어놓습니다.
특히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환경에서 일찍부터 음악교육을 받아온 친구들을 보면서 기가 많이 죽었다고 하는데요. 지금처럼 늘 웃는 얼굴을 갖게 된 것도 당시의 경험과 관련이 있다며 “웃는 얼굴이 아니면 견딜 수 없었을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여기에 어려운 가정형편까지 겹치면서 결국 송창식은 학교를 중퇴하게 됩니다.
가수 송창식 고교 중퇴 후 노숙생활, 쎄시봉을 만나다

학교를 그만둔 뒤 송창식의 생활은 더욱 힘들어졌습니다.
그는 약 2년 동안 일정한 거처 없이 생활하며 노숙까지 했던 시절이 있었다고 여러 방송을 통해 털어놓았습니다.
이번 ‘김주하의 데이앤나잇’에서도 당시를 회상하며 “세상에서 가장 좁은 곳에서도 잘 수 있다”고 말할 정도로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런 송창식의 인생을 바꿔놓은 곳이 바로 쎄시봉이었습니다.
송창식은 “노래하면 밥을 준다는 말에 쎄시봉에 들어갔다”며 당시 자신에게는 가수가 될 기회라기보다 우선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고 회상했습니다.
하지만 이 선택은 결과적으로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쎄시봉에서 송창식은 조영남, 윤형주, 이장희, 김세환 등 당대 청년 음악인들과 교류하면서 본격적으로 대중음악의 길을 걷게 됩니다.
가수 송창식 윤형주와 트윈폴리오 결성, 가수 송창식의 시작
송창식은 윤형주와 함께 트윈폴리오를 결성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1968년 음반을 발표하고 ‘하얀 손수건’ 등을 통해 사랑받으며 당시 청년문화를 대표하는 포크 듀오로 주목받았습니다.
이후 윤형주와 각자의 길을 걷게 되면서 송창식은 솔로 가수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클래식 음악을 공부하며 쌓은 음악적 기반에 포크와 국악적인 요소, 자신만의 독특한 창법을 더하면서 기존 가수들과는 다른 음악세계를 만들어갔습니다.
‘피리 부는 사나이’·‘왜 불러’, 1970년대 전성기

솔로 가수로 나선 송창식은 1970년대 수많은 히트곡을 발표하며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피리 부는 사나이’, ‘왜 불러’, ‘한번쯤’을 비롯해 ‘고래사냥’, ‘담배가게 아가씨’, ‘사랑이야’, ‘그대 있음에’, ‘푸르른 날’ 등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노래들을 남겼습니다.
단순히 노래를 잘 부르는 가수를 넘어 직접 곡을 만들고 자신만의 독특한 창법과 음악세계를 구축하면서 1970년대 한국 대중음악을 대표하는 싱어송라이터로 자리 잡았습니다.
특히 한복을 즐겨 입고 무대에 오르는 모습과 기타 연주, 자유로운 창법은 송창식만의 개성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대마초 파동과 ‘밀고자’ 오해
전성기를 누리던 송창식에게 힘든 시기도 있었습니다.
1970년대 가요계를 뒤흔든 대마초 파동 당시 송창식 역시 조사를 받았지만, 그는 훗날 자신은 노래하는 데 좋지 않다고 생각해 대마초를 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사건 이후 자신이 다른 가수들을 경찰에 이야기한 것처럼 소문이 퍼지면서 이른바 ‘밀고자’라는 오해까지 받았다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이후에도 송창식은 음악 활동을 이어갔고 여러 차례 10대 가수에 선정되는 등 꾸준한 인기를 누렸습니다.
가수 송창식 쎄시봉과 함께 이어온 음악 인생

세월이 흐른 뒤에도 송창식의 음악 활동은 계속됐습니다.
특히 쎄시봉이 방송과 공연을 통해 다시 주목받으면서 윤형주, 김세환 등 과거 음악 동료들과 함께 무대에 서며 중장년층에게는 추억을, 젊은 세대에게는 한국 포크음악의 매력을 전했습니다.
각종 방송과 공연에서도 자신만의 음악과 쎄시봉 시절의 이야기를 꾸준히 들려주며 현역 음악인으로 활동해왔습니다.
가수 송창식 근황, 정미조와 함께 방송 출연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기타와 노래를 놓지 않고 공연과 방송을 통해 대중과 만나고 있는 가수 송창식, 오는 10월 기타리스트 함춘호와 합동 콘서트를 앞두고 있는데요, 그런 가운데 이번에 MBN ‘김주하의 데이앤나잇’에는 정미조와 함께 출연하게 되었네요.
가수 송창식 성대결절, 두 차례 수술에도 이어온 노래
오랜 세월 노래해온 송창식에게도 목소리의 위기는 있었습니다.
송창식은 1976년과 2017년 두 차례 성대결절 수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성대 수술에 대해 지금까지 오랜 시간 만들어온 목소리를 잃고 다시 발성과 연습을 통해 목소리를 만들어가는 과정과 같다고 설명했는데요, 수술 이후 이전과 완전히 같은 목소리로 돌아오기는 어려웠다는 아쉬움도 털어놓았습니다.
그럼에도 송창식은 지금까지 꾸준히 기타와 발성 연습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음계와 음악적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계속 연습해야 한다며 “연습은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는 생각을 밝힐 만큼 음악에 대한 열정은 여전합니다.
두 차례의 성대 수술과 70대 후반이라는 나이에도 꾸준히 무대에 설 수 있는 배경에는 이처럼 오랜 시간 이어온 연습과 자기관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가수 송창식 저작권료 수입 재산
송창식은 ‘피리 부는 사나이’, ‘왜 불러’, ‘담배가게 아가씨’ 등 자신의 대표곡 상당수를 직접 만들며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해왔습니다.
오랜 세월 그의 노래가 꾸준히 불리고 있는 만큼 저작권료 수입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송창식은 과거 방송에서 저작권료 등을 포함해 연간 약 1억 원 정도의 수입이 들어온다는 취지로 밝힌 바 있습니다.
다만 노래 저작권료는 곡 사용량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 매년 같은 금액을 받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전성기에는 많은 수입을 올렸지만 재산을 모으는 데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합니다. 주변 사람의 부탁으로 보증을 서거나 돈을 빌려주면서 적지 않은 돈을 잃었던 경험도 털어놓았습니다.
그럼에도 돈을 빌려간 사람들을 원망하기보다는 생활하는 데 필요한 만큼 있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다고 합니다.
수많은 히트곡을 직접 만들어온 만큼 현재까지도 저작권료가 발생하고 있으며, 큰 재산을 모으는 것보다 음악과 연습에 집중해온 송창식의 삶의 방식도 엿볼 수 있습니다.
가수 송창식 결혼 아내(부인) 한성숙 나이(차) 직업 누구?

송창식은 아내 한성숙 씨와 1977년에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두 사람은 동갑내기로 서울예술고등학교 동창이었다고 하는데요, 송창식은 성악과, 한성숙 씨는 미술과에 재학했다고 합니다. 한성숙 씨는 이후 화가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가수 송창식 아내(부인) 한성숙 결혼스토리
송창식과 아내 한성숙 씨는 서울예술고등학교 동창으로 처음 인연을 맺었습니다.
두 사람이 다시 가까워진 것은 1975년 송창식이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연을 갔을 때였습니다. 현지에서 우연히 한성숙 씨의 쌍둥이 언니를 만난 송창식은 동창이었던 한성숙 씨의 근황을 물었고, 당시 스튜어디스를 그만두고 이태원에서 골동품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됐습니다.
이후 귀국한 송창식은 한성숙 씨와 다시 만나 교제를 시작했고, 결혼을 결심했습니다.
송창식은 결혼 승낙을 받기 위해 예비 장인을 찾아가 큰절을 올리며 한성숙 씨와 결혼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는데요. 너무 빠른 결정이 아니냐는 장인의 말에 “좋은 남편은 못 되더라도 좋은 사위는 되겠다”고 답했고, 결국 결혼을 허락받았습니다.
두 사람은 1977년 결혼해 부부의 인연을 맺었습니다.
송창식 자녀 2남 1녀, 두 자녀 입양한 사연

송창식과 아내 한성숙 씨는 슬하에 2남 1녀, 총 세 자녀를 두고 있습니다. 자녀는 장남 송결, 장녀 송무늬, 차남 송빛터이며, 이 가운데 부부가 직접 낳은 자녀는 첫째 아들 송결 씨입니다.
1978년생인 장남 송결 씨는 송창식 부부의 친아들로, 게임 분야에 관심을 갖고 관련 업계에서 활동해왔습니다. 외국 게임회사에서 일한 뒤 2005년 엔씨소프트 기획자로 영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나머지 두 자녀는 아내 한성숙 씨의 쌍둥이 언니인 처형과 관련된 특별한 사연을 통해 가족이 됐습니다.
송창식이 2022년 방송에서 밝힌 내용에 따르면, 미국에 살던 처형이 한국에서 아이를 입양해 데려가려고 했지만 입양 관련 제도가 바뀌면서 계획대로 진행할 수 없게 됐다고 합니다.
이에 송창식 부부가 그 아이를 직접 입양해 키우게 됐고, 그 아이가 장녀 송무늬 씨입니다. 송무늬 씨는 성장한 뒤 의상디자인 분야에서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차남 송빛터 씨 역시 특별한 사연으로 송창식 부부의 가족이 됐습니다. 처형이 미국에서 낳은 아이였지만 직접 양육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면서 송창식 부부가 데려와 아들로 키우게 됐다고 합니다.
이렇게 송창식 부부는 친아들 송결 씨와 입양한 두 자녀 송무늬·송빛터 씨까지 세 남매를 함께 키웠습니다.
송창식은 방송에서 친아들 역시 두 동생을 특별하게 구분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가족으로 받아들였다고 전하며 세 자녀와 얽힌 특별한 가족사를 공개한 바 있습니다.
송창식 아내와 별거 근황, 이혼·졸혼은 아니다
송창식은 2019년 방송을 통해 아내 한성숙 씨와 약 20년째 따로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을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송창식은 아내가 사업을 하면서 떨어져 살게 된 지 오래됐으며 1년에 한두 번 정도 만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이혼이나 졸혼은 아니며 법적으로는 여전히 부부라고 설명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특별한 불화가 있었다기보다는 서로의 생활 방식에 따라 오랫동안 따로 지내게 됐다는 것이 송창식의 설명이었습니다.
송창식은 이러한 이야기가 알려지는 과정에서 아내의 자존심이 상할까 걱정된다는 마음을 털어놓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