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김상희가 6월 15일 KBS 가요무대에 출연합니다.
김상희는 고려대학교 법대를 졸업한 엘리트 출신으로, 대학생 신분으로 가수 활동을 시작해 화제를 모았으며 ‘코스모스 피는 길’, ‘서울의 찬가’, ‘울산 큰애기’, ‘참사랑’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기며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특히 당찬 성격과 뛰어난 진행 실력을 바탕으로 가수뿐 아니라 방송 MC로도 활약했으며, 오랜 세월 봉사와 기부 활동에도 앞장서며 후배들과 대중의 존경을 받아왔습니다.
한때 정치적 이유로 방송 활동에 제약을 받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특유의 긍정적인 에너지와 성실함으로 위기를 극복하며 지금까지도 꾸준히 무대에 오르고 있는데요.
이번 글에서는 가수 김상희의 프로필과 집안, 어린 시절, 데뷔 과정, 남편 유훈근과의 결혼 이야기, 자녀, 그리고 최근 근황까지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가수 김상희 과거와 데뷔 이야기
어린 시절부터 동네에서 소문난 수재였던 김상희는 학창 시절 내내 전교 1~2등을 다툴 정도로 뛰어난 성적을 유지했습니다. 부모님의 뜻에 따라 1961년 고려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했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 또한 남달랐습니다.
대학 입학 직후 친구들과 재미 삼아 응시한 KBS 전속가수 선발시험에 참가했다가 1등으로 합격하면서 예상치 못하게 가수의 길에 들어서게 됐습니다. 이후 같은 해 전속가수 심사위원이었던 작곡가 손석우의 곡 삼오야 밝은 달로 가요계에 데뷔했습니다.
당시에는 대학생이 연예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본명 최순강 대신 친구들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온 김상희라는 예명을 사용했습니다.
또한 학교와 가족에게 가수 활동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공개방송 대신 녹음 방송 위주로 활동하며 이른바 ‘얼굴 없는 가수’로 경력을 쌓았습니다.
하지만 대학 4학년 무렵 버스 사고를 당하는 일이 발생했고, 우연히 같은 버스에 타고 있던 대학 학보사 기자가 이 사실을 기사로 보도하면서 김상희가 고려대학교 학생이자 가수라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습니다.
이 일로 아버지의 강한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습니다. 아버지는 딸이 연예계 활동을 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겼고, 김상희에게 가수를 그만두라고 요구했습니다.
이에 김상희는 “전속가수 활동만 끝나면 그만두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미 음악에 대한 열정을 접을 수 없었던 그는 이후에도 몰래 가수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이후 명동 음악살롱에서 MC로 활동하며 무대 경험을 쌓았고, 처음 데이트를 비롯한 여러 곡이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서 대중적인 주목을 받게 됩니다.
결국 학업과 가수 활동을 모두 성공적으로 이어간 김상희는 대학 졸업 후 본격적으로 가요계에 자리 잡으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여성 가수로 성장하게 됩니다.
가수 김상희 전성기와 히트곡 활동

결국 학업과 가수 활동을 모두 성공적으로 이어간 김상희는 1965년 고려대학교를 졸업한 김상희는 본격적으로 가수 활동에 전념하며 전성기를 맞게 됩니다.
당시 여성 학사 가수 자체가 드물었던 만큼 고려대 법대 출신이라는 이력은 큰 화제가 됐고, 대중은 그녀를 ‘여자 학사가수 1호’로 기억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손석우, 김강섭, 정민섭, 남국인, 신중현, 박춘석 등 당대 최고의 작곡가들과 협업하며 수많은 히트곡을 발표했습니다.
대표곡으로는 처음 데이트, 울산 큰애기, 경상도 청년, 코스모스 피어 있는 길, 단벌신사, 빨간 선인장, 참사랑, 즐거운 아리랑 등이 있습니다.
특히 밝고 세련된 이미지, 시원한 가창력, 안정적인 무대 매너를 바탕으로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으며, ‘믿고 듣는 가수’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높은 인기를 누렸습니다.
특히 밝고 세련된 이미지와 시원한 가창력, 친근한 매력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으며, 1968년에는 연예인 납세 실적 1위에 오를 정도로 최고의 인기를 누렸습니다.
가수 활동과 함께 방송 진행자로도 활약했습니다. 1967년 KBS 프로그램 당신의 멜로디 진행을 맡으며 여성 최초 방송 MC로 활동했고, 이후 각 방송사에서 섭외 경쟁이 벌어질 정도로 높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또한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의 2대 애랑 역을 맡아 노래뿐 아니라 연기와 무대 퍼포먼스까지 선보이며 다방면에서 재능을 발휘했습니다.
김상희는 대한민국 한류 1세대 가수로도 평가받습니다. 1970년 일본 오사카 엑스포 행사에 참가해 패티김과 함께 한국 대표 가수로 무대에 올랐고, 이후 일본과 미국 등 해외에서 음반을 발표하며 활동 영역을 넓혔습니다.
특히 1976년 동경국제가요제에서 즐거운 아리랑으로 특별상과 벚꽃상을 수상하며 국제무대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았습니다. 이후 약 6년 동안 일본을 중심으로 해외 활동을 이어가며 한국 가요의 위상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전성기에도 시련은 있었습니다. 단벌신사와 어떻게 해 등이 사회적·정치적 이유로 금지곡으로 지정됐고, 남편 유훈근 씨가 김대중 전 대통령 측 인사로 활동하면서 방송 출연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이로 인해 한동안 방송 활동이 크게 줄어들었고, 생계를 위해 이화여대 인근에서 직접 샌드위치 가게를 운영하며 힘든 시기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또한 1999년에는 장남의 병역 문제와 관련한 논란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이후 꾸준한 음악 활동과 봉사활동을 이어가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여성 가수로서 변함없는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가수 김상희 봉사 활동과 방송 활동 근황
김상희는 가수와 방송인으로서의 활동뿐 아니라 사회공헌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습니다.
특히 1982년 연예인 봉사단체 한마음회를 창립한 뒤 수십 년 동안 회장을 맡아 어려운 이웃과 소외계층을 위한 봉사활동을 이어왔습니다.
전국의 복지시설과 양로원, 장애인 시설 등을 찾아 공연과 나눔 활동을 펼치며 연예계 대표 봉사인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러한 꾸준한 선행과 사회공헌 활동을 인정받아 2004년에는 문화훈장을 수훈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김상희는 가수 활동 못지않게 방송인으로도 오랜 세월 사랑받았습니다. 본인 스스로 “가수보다 방송국 월급쟁이로 지낸 시간이 더 많다”고 말할 정도로 수많은 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대중과 소통해 왔습니다.
현재도 김상희는 80대의 나이에도 꾸준히 음악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최근에도 KBS 가요무대를 비롯한 각종 음악 프로그램과 공연 무대에 출연하며 변함없는 가창력과 무대 매너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데뷔 이후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많은 히트곡과 방송 활동, 봉사활동을 이어온 김상희는 대한민국 최초의 여자 학사가수이자 여성 최초 방송 MC, 그리고 한류 1세대 가수로서 한국 대중음악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살아있는 전설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가수 김상희 결혼 남편 유훈근 누구

김상희는 1968년경 방송인 출신 유훈근 씨와 결혼했습니다.
두 사람의 인연은 방송국에서 시작됐는데요. 당시 김상희가 MC로 활약하던 프로그램의 담당 PD가 바로 유훈근 씨였다고 합니다. 함께 방송을 만들며 가까워진 두 사람은 연인으로 발전했고 결국 결혼에 골인했습니다.
김상희는 1943년생, 남편 유훈근 씨는 1940년생으로 두 사람의 나이 차이는 3살입니다.
남편 유훈근 씨는 전라북도 전주 출신으로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뒤 KBS 프로듀서(PD)로 방송계에 입문, 이후 MBC 보도부 차장을 지내는 등 언론인으로 활동했으며, 이후에는 정치권과 경제계에서도 다양한 경력을 쌓았습니다.
특히 신민당 김대중 총재의 공보비서로 활동하며 정치권과 인연을 맺었고,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습니다. 이후에는 여러 기업의 대표이사를 맡으며 전문 경영인으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남편 유훈근 씨의 집안 역시 잘 알려져 있는데요. 부친 유청 씨는 제4대부터 제6대, 제8대 국회의원을 지낸 4선 의원 출신으로, 정치권과 교육계에서 활발히 활동한 인물입니다.
다만 이러한 정치적 배경 때문에 김상희 역시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과거 정치적 상황 속에서 방송 출연에 제약을 받는 등 힘든 시기를 보내기도 했지만, 부부는 오랜 세월 서로를 의지하며 가정을 지켜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가수 김상희 남편 유훈근 결혼 스토리
김상희와 남편 유훈근 씨의 결혼은 당시 사회적 편견과 양가의 반대를 극복한 사랑 이야기로 유명합니다.
두 사람의 인연은 KBS 방송국에서 시작됐습니다. 당시 유훈근 씨는 방송 PD로 활동하고 있었고, 신인 가수였던 김상희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다고 합니다.
특히 당시만 해도 여성 MC가 흔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는데요. 유훈근 씨는 김상희의 재능과 당찬 성격을 눈여겨본 뒤 방송 MC 자리를 제안했고, 주변의 우려에도 “프로그램이 실패하면 내가 책임지겠다”는 각오로 적극 추천했다고 전해집니다.
김상희 역시 음악살롱 등에서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뛰어난 진행 실력을 보여주며 가수뿐 아니라 방송인으로도 큰 인기를 얻게 됐습니다.
이후 프로그램을 함께 제작하며 가까워진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연인으로 발전했고, 1968년 약혼을 거쳐 결혼을 약속하게 됩니다.
하지만 결혼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유훈근 씨는 전북 전주의 정치 명문가 출신으로, 부친 유청 씨가 4선 국회의원을 지낸 집안의 장남이었습니다. 당시 집안에서는 연예인을 며느리로 맞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갖고 있었고, 김상희와의 결혼을 강하게 반대했다고 합니다.
반대로 김상희의 가족들 역시 엄격한 종가 분위기의 집안에 딸을 보내는 것을 걱정하며 결혼에 선뜻 찬성하지 못했다고 전해집니다.
양가 모두의 반대가 이어졌지만 두 사람의 뜻은 확고했습니다. 결국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으로 양가를 설득했고, 오랜 노력 끝에 가족들의 허락을 받아 결혼에 골인하게 됐습니다.
가수 김상희 남편 유훈근 결혼생활과 자녀
김상희와 남편 유훈근 씨는 양가의 반대를 극복하고 결혼한 이후 오랜 시간 서로를 의지하며 가정을 꾸려왔습니다.
결혼 후 유훈근 씨는 KBS와 MBC에서 방송인으로 활동했으며, 이후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공보비서로 발탁되면서 정치권에서도 활동했습니다.
이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지만 낙선했고, 이후에는 기업 경영인으로 활동하며 새로운 길을 걸었습니다.
김상희는 여러 인터뷰를 통해 남편에 대한 깊은 신뢰를 드러낸 바 있는데요. 특히 “남편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남편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두 사람은 슬하에 두 아들을 두고 있습니다. 김상희는 바쁜 가수 활동과 방송 활동 속에서도 자녀 양육에 많은 정성을 쏟았다고 하는데요, 과거에는 “아이들 밥만큼은 직접 챙겨주고 싶었다”고 말할 정도로 자녀들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 두 아들 모두 성인이 되어 결혼 후 각자의 가정을 꾸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다만 1999년에는 장남의 병역 문제와 관련해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습니다. 당시 병역 판정 과정에서 부적절한 청탁이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김상희가 벌금형을 선고받았고, 대중의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후 김상희는 별다른 해명보다 자숙과 함께 본업인 가수 활동에 집중했으며, 꾸준한 봉사와 기부 활동을 이어가면서 대중과 다시 소통해 왔습니다. 현재도 원로 가수로서 음악 활동과 사회공헌 활동을 이어가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가수 김상희 가족에 대한 이야기
김상희는 과거 방송에서 남다른 규모의 대가족 이야기를 공개해 화제를 모은 적이 있습니다.
당시 김상희는 “우리 가족은 직계가족만 해도 30명이 넘는다”고 밝히며 놀라움을 안겼는데요. 시댁과 남편 유훈근 씨 집안 모두 형제자매가 많은 대가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김상희는 “시아버지가 8남매 중 막내이고, 시어머니는 6남매이며, 남편 형제도 8명”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남편 형제들에 배우자와 자녀들까지 모두 합치면 32명이 되고, 우리 가족까지 포함하면 직계가족만 34명 정도 된다”고 말해 출연진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또한 “가족들이 다 함께 여행을 가다가 비가 오면 다리 밑에서 밥을 먹기도 했다”고 회상하며 대가족만의 특별한 추억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출연자들은 “함께 갈 식당도 찾기 힘들겠다”며 공감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김상희는 결혼 후 정치 명문가이자 대가족인 시댁의 맏며느리로서 오랜 세월 가족들을 살뜰히 챙겨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바쁜 가수 활동 속에서도 가족 간의 화목을 중요하게 생각해 왔으며, 여러 인터뷰를 통해 가족이 자신의 가장 큰 힘이자 든든한 버팀목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함께 보면 좋은 글>
가수 김상희 프로필 나이 고향 가족 키 혈액형 종교 학력 소속사
가수 김상희의 본명은 최순강입니다. 1943년 3월 29일생으로 올해 나이 82세입니다.
김상희의 고향은 경기도 경성부 청진정(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진동)이며, 가족으로는 남편 유훈근 씨와 두 아들이 있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뛰어난 성적으로 유명했는데요. 수송국민학교와 풍문여자중학교, 풍문여자고등학교를 거쳐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를 졸업했으며, 이후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에서 언론학 석사 과정을 마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혈액형은 B형이며 종교는 없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고려대학교 법대를 졸업한 엘리트 출신임에도 음악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지 않고 가수의 길을 선택한 김상희는 이후 대한민국 대중가요계를 대표하는 원로 가수로 성장하며 오랜 시간 사랑받고 있습니다.